한 나라 안에서도, 책을 읽는 방식과 선호하는 저자, 장르에는 놀랄 만큼의 지역별 차이가 존재합니다. 같은 해, 같은 도서관 시스템 안에서도 서울과 광주의 대출 1순위 책이 다르고, 인천과 대구가 사랑하는 작가가 서로 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2025년 전국 공공도서관의 대출 데이터와 실제 큐레이션 사례를 기반으로 지역별 책 선호도, 작가 인기 차이, 그리고 독서 취향의 경향성을 분석합니다. 서울, 수도권, 지방 도시들 간의 문화적 차이를 통해 책이 어떻게 지역과 연결되고, 다시 사람과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깊이 있는 독서 지형도입니다.
서울·수도권: 감정 중심의 스토리텔링과 빠른 트렌드 흡수
서울과 수도권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밀집한 공간입니다. 도서관의 숫자와 예산도 가장 많으며, 신간 도입 주기나 이용자의 기대치도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이런 환경은 자연스럽게 감성 중심의 문학 소비, 그리고 트렌드에 민감한 독서 취향을 만들어냅니다.
2025년 상반기 서울시교육청 소속 도서관과 경기도 시립도서관 12곳의 대출 통계를 종합 분석한 결과,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소설은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3』**와 **정세랑의 『우리의 정원은 아직 겨울입니다』**였습니다. 특히 이 두 작품은 20~40대 여성 이용자의 대출 비중이 전체의 6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뚜렷한 성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수도권 지역은 에세이의 대출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1.7배 이상 높습니다. 대표적인 인기 도서로는 김이나의 『보통의 언어들로』, 이수연의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 마라』, **이슬아의 『일간 이슬아』**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SNS와 연계된 독서 트렌드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독서 특징은 ‘읽고 끝’이 아니라, 읽은 뒤 공유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점입니다.
또한 서울과 수도권은 외국 문학이나 번역본 소비율도 매우 높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 프레드릭 배크만 등의 작품은 번역본은 물론 원서로도 꾸준히 대출되고 있으며, 외국의 인문서도 소화되는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즉, 서울과 수도권은 정보 접근성, 독서 커뮤니티의 밀도, 문화 인프라의 확장성이 높아 **'감정적 공감 + 지적 자극'**을 동시에 추구하는 독서 스타일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중·대도시권: 실용과 균형, 현실성 있는 콘텐츠 중심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중대형 광역시 도서관은 서울처럼 빠르게 신간을 수급하고 있지만, 독서 스타일은 조금 다릅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실용성, 현실감, 그리고 삶의 균형을 맞추는 독서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서윤의 『나는 매일 경제 공부를 합니다』, 켈리 최의 『웰씽킹』, 홍춘욱의 『돈의 흐름에 올라타라』 같은 재테크·자기 계발서입니다. 특히 30~50대 직장인, 자영업자 독자층에서 높은 대출 비중을 보이고 있으며, 인천, 대구 지역은 이러한 실용도서 대출 비중이 서울보다 30% 이상 높습니다. 중대도시권의 독서 특징 중 하나는 감정에만 집중하지 않고, 실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더 선호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지역 도서관 큐레이션은 책의 메시지나 주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며,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한 추천 시스템도 잘 정착되어 있습니다. 작가 측면에서도 차이가 보입니다. 서울에서는 감성 소설가들이 두각을 나타낸다면, 중대도시권에서는 김훈, 공지영, 조정래, 유시민처럼 뚜렷한 가치관과 사회적인 시선을 가진 저자들의 대출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칼의 노래』, 『도가니』, 『태백산맥』, 『역사의 역사』는 여전히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주 비치되어 있고, 지역 시민단체나 평생학습관과 연계한 독서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활용됩니다. 중요한 점은 중대도시권은 서울과 달리 지역 작가에 대한 관심과 로열티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이국환, 광주의 고재종, 대구의 김종광 등의 책은 지역민 사이에서 '우리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며 독자와 작가 사이의 거리감이 짧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지역 독자들은 감성보다는 공감, 트렌드보다는 실용, 작가보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중소도시·농어촌 지역: 고전, 자기 계발, 실용 위주로 꾸준한 독서
충청, 강원, 전라, 경상 내륙 지역의 군 단위 도서관이나 읍면 단위 복합문화공간에서는 서울이나 대도시권과는 또 다른 독서 취향이 나타납니다. 생활과 밀접한 독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 있는 콘텐츠, 그리고 지역 정서와 연결된 작가에 대한 선호가 뚜렷합니다.
우선 대출 비중을 장르별로 보면, 자기계발/경제 실용서(35%), 고전문학/역사서(28%), 감성 에세이(17%), 소설(12%) 순이며, 이는 도시권과는 다른 뚜렷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짠테크』, 『돈의 속성』 같은 자산관리 도서는 직장인뿐 아니라 은퇴 후 재무관리에 관심 있는 50~60대 독자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소설 분야에서는 『불편한 편의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아몬드』 등 '회복'과 '감정 이입'이 가능한 서사가 중심을 이루며, 작가로는 김호연, 정세랑, 백수린, 조남주 등이 중소도시권에서도 안정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고전의 대출 비중이 높다는 것입니다. 『데미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군주론』, 『채근담』 등은 정독 도서로서의 수요가 꾸준하며, 이는 여유 있는 독서, 사색형 독서가 중소도시권에서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지역문화와 직접 연결되는 저자들에 대한 선호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전남 지역 도서관에서는 『남도문학기행』, 『전라도 말 사전』 같은 콘텐츠가 지역학 코너를 통해 꾸준히 대출되고 있으며, 전북의 조정래 작가, 충남의 이문열 작가, 강원의 함민복 시인 등은 해당 지역 독자들에게 ‘우리 작가’로 받아들여집니다.
비록 도서관 인프라는 서울이나 대도시에 비해 열악할 수 있지만, 중소도시 독자들의 독서는 꾸준하고 깊으며, 도서관은 실질적인 생활교육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론: 책은 같아도, 읽는 방식은 다르다
2025년 도서관 대출 순위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지역의 정서, 문화 수준, 독자층의 라이프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감정 중심, 중대도시는 실용 중심, 중소도시는 생활 밀착형 독서에 강세를 보입니다.
책은 그 자체로 정보지만, 어떤 책을 고르고, 어떻게 읽느냐는 지역 주민의 삶과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당신이 사는 지역의 인기 도서를 살펴보세요. 그것이 곧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질문일지 모릅니다.